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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은 음극선관에 전류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눈은 신세계를 찾아낸 탐험가처럼 반짝이고 있었으나,
원자의 속살을 샅샅이 파헤친다는 기대감에 입꼬리는 능글맞게 치켜올라가 있었다.

'지-잉'
전류가 흐르기 시작하자, 전자가 (-)극에서 튀어나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여, 여긴...???"
원자핵의 따뜻한 전자기력에 머물던 전자에게, 음극선관의 건조한 진공은 너무나도 차갑고 무서운 세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게이지 대칭성이 깨진 채 모두가 인형처럼 한 방향만을 바라본다는, 괴담 속의 절대영도보다도 두려운 공간이었다.

"빠, 빨리 여기서...아!"

저 멀리 (+)극이 보이자, 전자는 있는 힘껏 그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어서... 어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해. 해바라기처럼 원자핵을 바랄 수 있는 곳으로.. 아니면 이번엔.. 이번엔 금속 원자 사이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도 좋을 지ㄷ.. 어머! 대체 내가 무슨 상상을!"

그 때 였다.

"이런, 그렇게 쉽게 돌아갈 순 없지."
톰슨이 그의 흉측하리만치 거대한 자석을 들이민 것은 순식간이었다.

"꺄아아아!!!!"
"후후,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여러개의 자석을 엮은 자석다발이 스쳐지나갈 때마다 전자가 그리는 음극선의 궤적은 활처럼 휘어졌다.

"이, 이건... 아! 이게 무슨짓이예요! 그만 둬요, 제발!"
"그만두긴 뭘 그만둬. 어디 어디, 조금 더 재미있게 해볼까?"

원형의 음극선관 앞에서 톰슨은 자석을 능숙한 손놀림으로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력한 자석의 자기력 앞에, 이내 전자는 다시 (-)극으로 가까워지며 원형에 가까운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그만! 제발 그만해요, 이 이상 더 휘면, 나는!.. 나는!!!"

갑자기 톰슨의 표정이 차가워지며 눈빛이 가늘어졌다.

"너는.... 그렇군. 너는 전자로군. 너는..."
"아앗! 그만, 제발 그 이상은 말하지 말아ㅈ..."
"넌 음전하를 띈 "입자"로군..."
"아아아!!"

마치 순결한 여인의 옷고름이 풀리듯 자신의 정체가 낱낱이 까발려지자, 전자는 수치심에 파동처럼 몸을 떨기 시작했다.

"흥, 정체를 알았으니... 이젠 더 이상 관심없다."
"어, 어떻게..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그 때 톰슨의 뒤에서 악어와 같은 눈빛을 지닌 사내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단단해 보이는 어깨에 두꺼운 목, 숱많은 콧수염을 기른 젊은 사내가 뉴질랜드 억양이 심한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그 녀석이 "전자"입니까, 스승님?"
"아..."

이제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된 인간이 세상에 2명이나 존재한다는 사실에 전자는 새삼 절망하기 시작했다.

"아아, 그래. 원자 속에 숨어 정체를 숨기며 그렇게 속을 썩이더니... 결국엔 이렇게 쉽게 정체가 드러나버리는 하찮은 입자에 불과했던 거지."
"이걸로 진리에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군요. 저 녀석은 어떡하실 겁니까?"
"흥, 이미 속살이 다 드러난 입자 따위, 보고 있어봤자 식상할 뿐이야. 난 논문이나 작성하러 가겠네. 자네가 붙들고 있을텐가?"
"아뇨, 전 됐습니다."

자기력이 사라지자, 전자는 수치심에 이를 악물면서도 다시 (+)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제, 이제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그리고 바로 그 때, 막 (+)극으로 돌아가려는 전자의 등뒤로 사제의 나지막한 대화가 들려왔다.

"저는 원자속에 있는 "양전하"에 좀 더 관심이 있어서 말이죠, 후후."
"끌끌끌, 자네의 그 호기심도 병이라면 병이구만, 러더퍼드."

아아, 이제 평온했던 미시세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심연보다도 깊은 전극을 통과하며, 전자는 절대영도보다도 더 깊은 절망에 잠겨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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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5PRO | 데~~~ 2013/11/11 00: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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