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세계는 정보화가 진행되어 있다. 그리고 그 정보화 세계는 우매한 대중들을 일깨우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면, 그 지식들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사회 시스템에 의한 산물이다. 그 사회 시스템은 곧 정보화된 세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대중들이 더 이상 프로파간다에 속아넘어가지 않고 그 자신이 매체가 될 수 있는 세계 말이다.
마르크스주의가 무엇이던가? 쿠빌라이 칸이 돼지고기를 먹고 한 말이 무엇이던가? 너의 발가락 사이에 있는 세균의 종류가 무엇이던가?
더 이상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말 필요하지 않은 정보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그들 자신이 누구던가? 정보화된 세계에 살고 있는 시민이 아니던가? 물론 위에 나온 질문들을 전부 알 필요는 없다.
우리는 대중의 '역주행'에 주목하여야 한다. 대다수의 아프리카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뭔가? '학교'라는 단어가 극혐오스러운 것으로 보통 기억되지 않는가?
중동 지방에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피부가 새하얗고 목에 십자가를 걸고 있고, 한 손에는 성경이 들려 있다. 반대로 한 사람은 47식 칼라시니코프 돌격소총을 어깨에 메고는 메카를 향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자, 이 중에서 누가 '나쁜 사람'인가?
정답은 '모른다'이다. 물론 전자의 확률은 낮고 후자의 확률은 높다. 하지만 그 확률의 기준은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 이 정답도 '모른다'이다. 19~20세기에 성행하였고 지금까지도 그 잔재가 남아있는 백인 우월주의와 문명 개화론을 아는가?
우리는 발전하는 정보화 세계 속에서 많은 지식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지식이 정확한 지식이며 그 지식을 가진 사람이 과연 올바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으며 올바른 행동을 하는 지는 판단할 수 없다. 사회통념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회 내에서는 사회통념에 따라 행동하여야만 한다. 그렇다면 그 '사회통념'은 무엇인가? 누가 언제 어디서 왜 만들었는가?
우리가 아는 지식은 거짓이다. 승자의 지식이 존재하고 패자의 지식은 사라진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소비에트 연방에 가 본 적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적도 없다. 아니, 소비에트 연방과 박근혜 대통령이 실제하는지도 알 수 없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정보가 꼭 진실이라는 법은 없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말을 알고 있는가? 누가 한 말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외계인들에게 둘러싸여서 실험을 당하는지 게임기 기계 속의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가정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정작 결론은 그 어느 하나도 확실하지 않다. 이게 모순된 내 내면의 세계이다.
세상에는 너무 잘난 사람이 많으면 안 된다. 그 잘난 사람들은 그들이 알고 있어서 잘나게 만드는 지식들이 모두 허상이었음을 알게 될 때의 좌절감과 실패감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때로는 분쟁도 일어날 수 있다. 자본가와 코민테른 회원이 만나면 일어나는 문화적 충돌 현상이다. 그들은 그 문화권 내에서는 잘난 사람이다. 하지만 둘 중의 하나는 필히 그르다. 어쩌면 두 가지 모두 그른 것일 수 있다.
아아... 백지여. 나는 그대가 부럽구나!
이 말에 대한 논리적인 비판을 해 주십시오. 제 논리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서입니다.
©issess / build 212
Comment : 3
무작위 ID1호 | 글이 길면 읽지않는 귀차니스트라서... 사실 댓글다는것도 귀찮은데... 이세스에는 달게되더군요?? 2013/12/22 19:28:06
콰지모도 | 싫어 2013/12/23 01:22:55
GigantischWehr | 접니다 Sweet Potato님 2013/12/23 15:25:43